설계 계약을 맺었다. 시공계약에 포함된 형식 말고 별건으로. 별도의 설계비 들일 필요까지 있느냐고 엄마는 묻지만, 절대로 필요하다.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것들을 명확한 이미지로 만들어 제시해내는 것, 내 역량 밖의 일이다. 그릇이며 포스터며 굿즈며 사모아보니 알 수 있었다. 당장 내 눈을 홀릴만한 것은 너무 많고, 각각 요소들이 어울리게끔 적당한 수준을 설정하긴 나 스스로 안된다. 아직 마감재까지 구체화한 단계는 아니나, 공간계획은 어느 정도 완료되었다. 놀라운 일이다. 상상했던 요소들이 거의 대부분 반영되고 있었으니까. 콘셉트 미팅 과정서 굳이 전달하지 않았던 구상들이 있었다.
손님을 맞이할 수 있지만, 전체 공간의 절반 이상을 허락지 않는다. 그마저도 주방 중심이며 다이닝룸은 분리했다. 벽, 혹은 복도같은 공간이 꽤 활용된다. 갤러리로 쓸 생각이다. 말인즉슨, 개방감에 가중치를 거의 두지 않겠단 얘기다.
이와 같은 공간구성을 잘 정리된 언어로 제안받은 시점서 이미 만족스럽다. 부가적인 효과가 하나 더 있다. 그리고 꽤 중요한 문제인데, 이 개인주의자를 위한 설계를 부모님은 분명 싫어할 것이다. 내가 직접 제안했다면 분명 다툼이 있었을걸. 관료주의 조직에서 체득한 요령으로 회피하는 것이다. 시작도 하기 전 힘 뺼 필요 없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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